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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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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일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난 당신이 필요해요."


나는 시력을 잃은 무용수로,

그리고 당신은 그런 나마저 이용해야 하는 존재로.


"이 결혼에 사랑 따윈 없어."


그러니 나를 사랑할 일도 없을 거라고, 남자는 오만하게 말했다.


사랑을 감히 바라선 안 되는 결혼.

하지만 사랑하는 척 모두의 눈을 속여야 하는 결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왜 이 남자 앞에 있는지.'


3년 전 알게 된 참담한 진실과 온몸을 불살랐던 배신감을.

나를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게 만든 그날의 비극을.


지금껏 수십 번이고 되새기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신이시여. 결코… 제가 택한 이 길을 후회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니 그 남자와의 결혼 따위,

사랑하는 연기 따위 어렵지 않았다.


*


하지만.


"제발… 나를 죽여 줘요.

"어쩌지. 난 널 죽을 때까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남자는 내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며 단언했다.


"너한테 죄가 있다면 내가 널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거야."


연극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신은 날 버리셨구나.'


완벽한 단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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